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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28)

량강도 혜산시

2015년 대한민국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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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작정 한의학을 배웠어요.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그냥 병원 노동자로 취직했어요. 북한에서는 한의치료를 고려치료라고 하고 병원에도 고려과가 따로 있어요. 그래서 거기에 취직했죠.”

 

- 한의학을 공부하고 싶었던 이유?

“어렸을 때 아파서 침과 뜸 치료를 정말 많이 받았는데 그러는 과정에 호기심이 생긴 것 같아요. 집에서 많이 반대했지만 꼭 해보고 싶었어요.”

 

“병원에 일반 노동자로 취직하다보니 병원에 필요한 일은 도맡아 했어요. 청소, 경비부터 시작해서 병원에서 조직한 ‘돌격대(공공기관들에서 국가 건설에 바치는 노동력)’에 참가하여 6개월 동안 건설장에서 일한적도 있어요.”

 

“병원에 취직할 때 침놓는 방법을 서술한 「침구학」이라는 책을 샀었는데 그 책에서 중요한 부분들을 따로 수첩에 적어서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녔어요. 그 책을 병원에서도 읽고 길을 오가면서도 읽고, 심지어 돌격대에 뽑혀 건설장에서 돌을 나르면서도 짬짬이 읽었어요. 그리고 그 수첩을 아직도 가지고 있어요.”

 

- 병원에서 월급 같은 건 주었나요?

“하하 명절 때 마다 먹는 기름 한 병 또는 고기 1kg정도였죠. 의사들도 한 달에 쌀을 2kg정도 밖에 못 받는데 제가 어떻게 받겠어요. 의사들은 환자들한테서 따로 챙기거나 대학생들이 과외를 하는 것처럼 병원일이 끝난 다음, 집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부수입으로 살아가요. 저 같은 경우는 병원에서 휴가를 받고 광산에서 광석을 캐면서 돈을 벌었어요.”

 

- 그럼 혼자서 공부했어요?

“1년 동안 저의 행동을 지켜보던 병원 고려과 과장이 어느 날 가르쳐주겠다고 했어요. 혜산에서 고려의학(한의학)으로 정말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저한테는 행운이었죠. 그래서 전보다 더 열심히 했어요. 주변에서 미쳤다고 할 만큼.. (하하) 정말 미쳤던 것 같기도 해요.”

 

- 어떤 내용들을 배웠는지 기억나는 게 있어요?

“그 분이 말하기를 침을 놓는 사람은 침을 맞는 사람의 아픔을 눈과 귀가 아니라 손끝으로 느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머리카락만큼 가느다란 침으로 두꺼운 책을 관통시켜 보라고 하면서 시범을 보여주셨는데, 40분동안 책을 관통시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제가 해봤는데 4시간동안 절반도 못하겠더라고요. 의학공부가 그냥 글자를 외우는 것이 아니었어요. (하하)”

 

“그렇게 3년을 해서 맥도 짚을 수 있게 되고 작은 병들을 치료할 수 있게 되면서 그냥 노동자가 아니라 환자치료를 돕는 간호조무사 역할을 했어요. 그러다가 탈북하게 되었어요. 작은 누나가 이미 중국에서 살고 있었거든요.”

 

- 강을 건널 때 무섭지 않았어요?

“너무 무서웠어요.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어머니와 같이 대낮에 강을 건넜는데, 도중에 어머니가 두 번이나 넘어져서 제가 겨우 부추기고 건넜어요. 너무 무서워서 아무 생각도 안 났어요.”

 

“중국에서 얼마 안 있어 바로 한국으로 왔어요. 오는 도중에 산을 몇 개를 넘었는데 일행에 80세가 넘으신 할머니가 계셨어요. 그 분이 도중에 더는 못 가겠다고 말하면서 길에 눕는 바람에 고생 좀 했어요. 결국에는 할머니를 업고 산을 넘었어요. 하하”

 

- 나중에 한의학 공부를 할 거예요?

“북한에서는 실력만 있으면 의사자격증 같은 거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근데 여기는 다르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냥 간호조무사가 되고 싶어요. 한의치료를 너무 좋아해서 탈북할 때 공부하던 수첩과 제가 쓰던 침통을 가지고 나왔지만 한국에서 의학공부를 하는 것이 저에겐 무리인 것 같아요. 대학 입학을 하려면 시험을 봐야 하는데 기초지식이 너무 약해서 못 하겠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는 알파벳부터 배워야 하니까요. 직접 치료하지는 못해도 치료를 돕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하하)”

 

침통을 보이면서 웃는 그의 모습이 밝은 슬픔인지 어두운 기쁨인지 알 수 없었다. 의사는 될 수 없지만 조금만 공부해서 자격증을 따면 간호조무사를 할 수 있다는 기쁨의 표출이었는지 아니면 북한에서 태어난 <죄>로 배움의 시기를 놓친 원망의 표출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한의학을 얼마나 사랑하고 얼마나 배우고 싶어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혹자는 배움에는 시기가 따로 없다고 하지만 현실에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며 이런 현실은 한국에 온지 1년밖에 안 된 그에게 너무 가혹한 것 같다.

 

 

 

강응찬 에디터

한반도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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