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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승현 

전주 기전대학교 군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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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지금은 방학기간이에요. 교수들은 방학 때 논문을 써야 하니까, 저도 이제 논문도 쓰고, 책을 좀 봐야겠다 생각했어요. 전공하고 상관 없는, 인문학적인 책을 찾아 보려고 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여행하는 것을 좋아해서 외국은 아니지만, 친구들과 함께 국내 여행을 다니려고 합니다.”

 

- 교수님의 소셜 계졍을 봤더니. 올해 안에 바리스타 교육도 받을 예정이시라고요.
“아. 제가 커피를 많이 좋아해요. 이전부터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싶었는데 계속 미루게 돼서 올해는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계속 사먹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는 친구가 커피숍을 하고 있어요. 거기 가서 일 해보려고요. 그 친구가 하게 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안 되면 제가 한번씩 내려 먹고 그러죠 뭐.”

 

- 한국에 와서 어떤 게 가장 힘드셨어요?
“학생이니까 공부하기도 어렵고, 혼자다 보니까 경제적인 것도 있었어요. 낯선 곳에 와 있으니까 두렵고 막막했어요. 아마 저와 같은 처지의 다른 사람들도 같은 감정을 느꼈겠죠.”

 

- 경제적인 건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고향 친구들 중에서는 활동적이거나 발이 넓은 친구들이 있어요. 그런 친구들은 장학금을 받을 기회를 찾더라고요. 그렇지만 저는 연고가 없다 보니까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었죠. 학기 중에도 하고, 방학에도 했습니다.”

 

- 어떤 아르바이트를 하셨나요?
“여대 앞에서 붕어빵도 팔아 보고, 엑스트라도 하고, 가이드도 하고, 치킨 배달도 하고, 호프 집 서빙도 해보고 노가다도 해봤어요. 많이 했죠.”

 

- 여대 앞에서 붕어빵을 팔게 되신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제가 예전에 서울여대 후문에서 살았어요. 아는 분이 붕어빵 장사를 거기서 했어요. 오다 가다 해서 친해진 분인데 “너도 한번 해 볼래?” 해서, 딱히 할 게 없기도 해서 그 분을 도와서 장사를 해 봤죠. 붕어빵 장사는 어려운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 분이 붕어빵 가게랑 꽃집을 함께 운영해서 그 분은 꽃집 쪽을 맡고, 저는 붕어빵 장사를 했어요.”

 

-여대 다니는 다른 학생들 많이 마주치셨겠어요.
“창피하다기보다는 좀 부러웠죠. 나도 대학생인데, 나는 웃을 수 있는 여유조차 없었으니까요. 모든 학생들은 아니겠지만, 경제적 걱정 없이 공부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겠다는 생각에 부러웠죠.”

 

- 북한에 있을 때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오기 전까지는 최전방 군인이었어요. 비무장 지대에서 6년 가까이 군복무를 했었죠. 거기 군인으로 있다가 한국에서는 이제 군사학을 가르치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해요.”

 

- 전공이 군사학이신데, 군사학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저희 과는 직업군인을 희망하는 친구들을 양성하는 과라고 보시면 돼요. 학생들은 학교를 나오면 부사관이나 3사관으로 많이 갑니다.”

 

- 군사학에서는 북한을 어떻게 바라보나요?
“군인의 관점에서는 북한을 두 가지 시각으로 보게 합니다. 국방백서에도 나와 있는데, 정권과 인민군이 주역이고 일반 주민들은 한민족이자 통일의 동반자라고 칭합니다. 학생들이 그걸 잘 구분을 못 하더라고요. 오랫동안 관심이 없었다 보니 그 쪽에 대한 기초가 부족해요. 기초가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에요. 생각을 정립할 수도 있으니 말이에요.”

 

- 학생들이 북한을 멀게 생각할 때 마음이 아프실 것 같아요.
“그렇지는 않아요. 아이들이 북한을 접할 기회가 없었으니까 당연한 거죠. 저는 처음부터 그게 필수라고 가르치지 않아요. 앞으로 너희가 가는 길에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 배울 생각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배우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알 수 있는 기본적인 상식만 알고 가라고 합니다. 저는 강제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 또 몇몇은 북한에 대해 적극적으로 공부하려는 학생들이 있지 않나요?
“지금 있는 학교는 군대에 가려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라 그런 친구들을 찾기는 힘듭니다. 대신 제가 이전에는 A대에서 강의를 했는데, 졸업 후 회사에 합격하였는데도 저에게 영향을 받아 북한 관련 대학원에 간 학생이 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대학원을 졸업하고는 앞으로 뭘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해서, 제가 죄인이 되어버렸어요. (하하) 그 친구가 대학원에 갈 때, 그 쪽을 전공하면 멋진 사람이 될 거라고 말했는데. 사기꾼이 됐어요. 너무 미안해요. 마음이 아파요. 그 친구는 회사까지 합격한 상황이었는데. 남북관계가 좀 좋아지면 그런 친구들에게 기회가 될 텐데 그렇지 않아 아쉬워요.”

 

- 한국에 오고 나서 바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신 거예요?
“저는 휴전선 넘어 와서 바로 대입준비를 해서, 넘어온 해에 대학에 합격하고 그 다음 해에 입학했어요. 그 때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때만 해도 그렇게 다들 공부할 분위기가 아니었거든요.
내가 한국에 왔을 때는 사람들이 공부할 필요 없다고 했어요. 우리가 대학에 간다고 해도 10퍼센트도 졸업 못 한다고 했죠. 차라리 나가서 용접 같은 기술이나 배우라고 했어요. 제 생각은 달라요. 이 길도 있고, 저 길도 있다고 이야기해야 하는 건데.
내 지론은, 한 명 졸업할지라도 100명은 대학에 보내 줘야 한다는 거예요. 한 명이 졸업해도 그건 맞는 거거든요. 설사 졸업을 못 한다고 해도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니니까. 그 때 용접해도 돼요. 그래도 대학생활을 해 본 것은 상당한 경험이죠. 어디 가서 알바 한 것 보다는 낫지. 붕어빵 판 것보다는 낫지. 그래도 요즘 북한에서 온 젊은 친구들은 다 공부하겠다고 해요. 진짜 좋은 생각이에요.”

 

-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 교수를 하는 것은 아닐 덴데, 교수님은 어떻게 교수의 직업을 택하신 것인가요?
“그렇지 않죠. 저도 교수할 생각은 없었어요. 처음 꿈은 그냥 학부를 졸업하는 거였어요. 졸업을 못 할 것 같았거든요. 휴학을 하면 학교에 다시 돌아가지 못할까 봐 휴학도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간신히 졸업했는데, 졸업하고 국회에서 일하면서 공부에 대한 재미가 늦게 찾아온 거예요. 공부를 좀 더 제대로 했으면 좋았을 걸 아쉬움이 찾아오더라고요. 국회에서 일하면서 정치의 힘이 참 크다고 생각했어요. 나도 대학에서 정책 같은 것을 공부하면 나중에 통일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가졌죠. 그래서 통일대학원에 가서 통일 정책을 공부했어요. 석사를 마치고 나니 박사 학위에도 관심이 생겼어요. 박사과정에서는 내가 제일 연구하고 싶은 것을 붙들고 있었어요. 박사논문도 내가 정말 관심 있는 쪽을 선택하니까, 1년만에 쓸 수 있었죠. 그렇게 학문에 열중하다 보니 어느 새 교수가 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한국에 홀로 넘어와 연고도 없이 새롭게 시작해야 했던 외로운 청년기. 그러나 그가 닦아 놓은 선배의 길은 한국에 오는 후배들에게 큰 희망이 되었다. 북한에서 온 청년들을 적극적으로 돕고 싶다는 그는 그의 삶 자체만으로 타인에게 꿈을 심어 줄 정도로 훌륭한 모범이 되었다. 또한 학생들의 생각을 존중하는 자유로운 교육으로 그들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그의 모습은 진정한 교사라고 불릴 만하다.

 

백윤하 에디터
한반도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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