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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자 : 2017. 01. 17.

한국에 온 지 7년, 나는 아팠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않도록 하고 싶다는 김연아씨. 강응찬 에디터

 

 

 


함경북도 경성시에서 출생
2010년 대한민국 입국

 

- “언제 한국에 오셨어요?”
“한국에 온지 7년 됐구요. 지금 한국외국어대학교 4학년이에요.”

 

- 공부는 괜찮으세요?
“전 공부가 너무 재밌어요. 늦게 시작한 것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만큼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 공부를 시작한지 얼마나 됐어요?
“한국에 와서부터 했으니까 7년째죠. 북한에서는 공부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어요. 저는 거의 독학으로 했는데, 어쩌면 죽도록 공부해 본적이 없어서 지금 공부하는 것이 더 재밌을지도 몰라요.”

 

- 혼자 오신 거예요? 부모님한테는 허락 받았었어요?
“아니요. 그때가 고등학생이었는데 (부모님에게) 말했으면 허락을 하지 않았겠죠. 그래서 그냥 나왔어요. 나중에 소식을 들었는데 저 때문에 아버지가 앓아 누우셨다고 하더라구요. 사실 한국에 오려고 집을 나온 건 아니었어요. 집안 형편이 갑자기 안 좋아져서 중국에 건너가 돈을 좀 벌어서 집에 보내려구 강을 건넜는데, 제가 중국에 있는 동안에 부모님이 잘못 되셔서 저 혼자 남게 되었어요. 그러다보니 한국에 오게 된거죠.”

 

- 고향에 대한 추억은?
“친구들이랑 모여서 기타를 치고 춤도 추면서 자주 놀았어요. 또 한국 드라마도 같이 보았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유리구두」라는 드라마였어요. 거기서 나오는 여주인공 머리를 따라 했다가 길거리에서 단속되어 혼났었죠. 북한에는 정부에서 정해준 패션 매뉴얼이 있잖아요. 머리 너무 기르면 안 되고 염색도 안 되고 등등.”

 

- 근데 사투리가 거의 없으시네요?
“한국에 와서 정말 열심히 (한국말을) 연습했어요.

 

- 연습한 것 치고는 너무 티가 안나요.
“고마워요. 저희들(탈북민들)한테는 최고의 칭찬인 거 아시죠?
처음 한국에 와서는 한국사람처럼 되겠다는 생각이 너무 컸어요. 그래서 일부러 북한 친구들도 안 만나고 한국말을 따로 공부하고, 어디 가서도 북한에서 왔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냥 얘기해요. 속일 수도 없고 또 일부러 속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 혹시 대학에서 차별 같은 것이 있었어요?
“네 처음엔 있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북한을 지지하고 북한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가진 교수님과의 갈등도 있었고 어떤 교수님은 ‘네가 한국사회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팀플>에 참가하지 말라’고 해서 울었던 적도 있었어요. 그때에는 엄청 흥분하고 화가 났었는데 공부하는 정신에 다 잊고 살다보니 지금은 괜찮아졌어요.

제가 아는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공항에 입사지원서를 냈는데, 공항 측에서 직업상 보안이 중요한 부분이라 탈북민을 받을 수 없다고 해서 많이 가슴 아파 했었어요.

그래서 저는 나중에 대학원에 가서 문화심리를 공부하려고 해요. 무엇인가 기준을 만들어 놓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할 때는 차별받는 문화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고 싶어요. 제가 겪은 것들을 탈북민이나 다른 사람들이 겪는 것을 원치 않아요. 하지만 한편으로 한국이 그만큼 다양한 사회이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생긴다는 것을 탈북민들이 알 필요는 있다고 봐요.

 

"근데 한국사람들 너무 대단한 것 같아요. 한국에서 7년 동안 살면서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라는 것을 최근 촛불집회를 보면서 절실히 느끼고 있어요.”

 

- 촛불집회에 대한 연아씨 생각이 궁금해요.
“처음에는 누가 맞고 틀린 것을 떠나서 자기의 생각을 저렇게 표현하는 방법과 용기에 놀랐고, 나중에는 북한을 생각하면서 좀 슬펐어요. 북한 사람들은 잘못된 것을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없다기보다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판단할 수도 없는 환경에 처해있다는 것이 너무 슬펐어요.”

 

- 고향에 연락은 해 보셨어요?
“연락을 하면 돈을 보내야 하는데 저는 지금 그럴 형편이 안돼요. 물론 열심히 일해서 고향에 돈을 보내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그 시간을 공부하는데 투자해서 내가 원하는 직업으로 안정적인 수입이 될 때 보내려구요.”

 

- 한국에 와서 연애는 많이 해 보셨어요? 한국 남자와 북한 남자를 비교한다면 무엇이 다를까요?
“확실히 한국남자들이 북한남자들보다 여자들에 대한 배려심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북한 남자들도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 조금 가부장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고, 여자가 할 일과 남자가 할 일을 나누는 경향이 있어요. 최근에 한국친구들과 함께 북한에서부터 배를 타고 내려온 한 친구(男)와 밥을 먹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여자들은 남자를 잘 챙겨주어야 한다면서 실례로 ‘아침밥은 무조건 여자가 차려야 한다’라는 말을 대놓고 여자들 앞에서 하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어요. 한국에 금방 온 것도 아니고 똑똑한 친구인데 그런 말을 하더라구요.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보면서 한국남자들에 대한 로망이 있었어요. 제 친구 중 한명은 정말 놀기 좋아하는 친구인데, 북한에서 한국드라마를 너무 보던 나머지 죽든 살든 한국남자를 만나서 한번 연해해보고 싶어서 탈북 했다고 하더라구요. (하하) 물론 드라마랑은 많이 다르지만 무엇이든 여자 중심에서 맞춰주는 건 있는 것 같아요."

 

 

어디에서 태어났든 부모의 그늘아래 있을 십대의 어린 나이에 총구가 도사리고 있는 국경을 넘어 중국에서 언제 잡힐지 모르는 환경이지만 돈을 벌어 집에 보냈고, 또 혼자서 수만 리를 돌아 한국에 입국하여 난생 처음 공부에 도전하였으며, 현재는 대학에서 전 과목 최고점수를 받고 있는 연아씨에게 최고의 칭찬은 북한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는 한 마디었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그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을 겪었고 많은 아픔을 당했겠지만 무의식 중에 그에게 가장 깊숙히 자리 잡은 상처는 '차별'이었던 것 같다. 탈북민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이방인들이 겪는 차별을 연아씨 말대로 다양성에 포함시켜야 하는가? 아니면 차별을 없애는 것이 곧 다양성을 지향하는 것인가?

 

 

 

강응찬 에디터
한반도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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